상처받지 않는 영혼 - 마이클 싱어

gondry 2021. 7. 13. 23:17

사슴처럼 숲속으로 달아나서 숨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안으로 숨어든다.

안으로 물러나서 마음을 닫아걸고 자신의 보호막 뒤에 웅크린다.

이때 실제로 당신이 하는 일은 에너지 중추를 닫는 것이다.

당신은 에너지 중추란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닫는 일을 유치원 때부터 줄곧 해왔다. 

당신은 가슴을 닫고 심리적 보호막을 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자기 안으로 들어와서 두려움을 일궈 놓는 온갖 에너지를 함부로 받아들이다가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 중추를 단속하는 방법을 당신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가슴을 닫고 자신을 보호할 때, 당신은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가린다.

그것은 물리적 위협이 가해지고 있지 않는데도 보호를 갈구하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당신은 자신의 에고, 당신의 자아 관념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에고는 물리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혼란과 두려움과 불안과 그 밖의 온갖 감정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혼란을 느끼는 당신의 그 부분이 균형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예민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을 한다.
당신은 광막한 우주 공간을 돌고 있는 한 행성 위에서 살면서, 자신의 결점이나 새 차에 난 흠집이나 사람들 앞에서 트림한 일 따위로 고민을 하고 있다. 이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만일 몸이 그토록 예민했다면 당신은 그것을 병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정도의 심리적 과민은 정상으로 생각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음식과 옷과 집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어서 바지의 얼룩이나 너무 크게 웃은 일이나 뭔가를 잘못 말한 일로 고민에 빠지는, 그런 사치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과민한 마음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주위에 에너지를 둘러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를 감춰 놓을 뿐,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당신은 병을 자기 안에다 가둬 둔다. 병은 갈수록 깊어진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을 늘 보호하려고만 들면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단계가 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당신은 두려움으로 집안에 숨어서 문을 닫아걸고 창문 가리개를 모두 내린다.

이제 캄캄해져서 햇빛을 보고 싶지만 당신은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음을 닫고 자신을 감싸고 지키면 당신은 그 겁에 질려 불안해하는 사람을 가슴속에 가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그리하려 마침내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더이상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성격과 습관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속에 쌓여 있는 문제를 감싸고 지키키만 하면 삶은 매우 따분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법이란다.' 하는 식의 말을 한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한 온갖 규칙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음에 혼란을 일으켜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삶은 자발적 기쁨과 의욕, 삶의 짜릿한 흥분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큰 문제만 생기지 않도록 주위를 단속하면서 나날을 살아간다.

하루가 끝나고 누군가가, '오늘은 어땠어?' 하고 물으면 보통 하는 대답은, '나쁘진 않았어.' 나, '안 죽고 살았어'이다.

이것은 그들의 인생관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들은 삶을 위협으로 여긴다.

좋은 날이면 다치지 않고 지나간 날이다. 이런 삶을 오래 살수록 당신은 더욱 더 꽁꽁 닫혀 간다.